아이에게 읽어줄 이야기

★⛄《토끼 눈사람과 하얀 날의 약속》

newb1230 2025. 4. 24.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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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연이의 겨울 친구 이야기 —


1장. 첫눈과 외로운 눈사람

겨울이 되자 태연이는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은 언제 오는 걸까… 작년엔 첫눈이 벌써 내렸는데.”

부쩍 조용해진 동네엔 친구들도 자주 놀러 오지 않았다. 추워서, 혹은 방학이라 다들 외출을 꺼리는 눈치였다.
“혼자 노는 건… 심심해.”

그날 밤, 조용히 시작된 눈은 이튿날 아침 마당을 하얗게 덮었다.
“우와! 눈이다!”

태연이는 부리나케 장갑과 목도리를 꺼내 마당으로 달려 나갔다.
사뿐사뿐 쌓인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태연이는 커다란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다르게 해보고 싶었다.
태연이는 기다란 눈귀 두 개를 달고, 눈사람의 얼굴에 당근 대신 작은 분홍 고구마를 코로 꽂았다. 그리고 검은 단추 눈,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에 자기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완성! 너는 이제… 토끼 눈사람이야!”

그날 밤, 눈사람을 바라보며 태연이는 조용히 말했다.
“좋겠다, 너는 항상 눈 속에 있잖아. 나는 겨울이 너무 좋은데, 혼자 노는 건 별로야…”

그 말이 전해졌을까? 바람 한 줄기가 살짝 불고, 눈사람의 귀가 깜빡 움직였다.


2장. 눈사람이 움직였다?

다음 날 아침,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태연이가 만든 토끼 눈사람이 살짝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 내가 어제 만들 땐 분명히 나무 쪽을 보고 있었는데…?”

하지만 바람에 밀렸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러나 점점 이상한 일들이 벌어졌다.
눈사람 옆에 작고 동그란 발자국이 생겨 있었고, 마당 한 켠에 놓은 눈뭉치들이 누군가 굴린 듯 줄지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 날 밤, 태연이는 거실 커튼 뒤에 숨어 눈사람을 지켜보기로 했다.

한참을 기다리던 그때—
토끼 눈사람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 움직인다! 진짜야!”

토끼 눈사람은 마치 토끼처럼 두 발로 폴짝폴짝 뛰며 눈밭을 누비더니, 눈꽃이 피는 작은 나무 아래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연이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가 속삭였다.
“…안녕?”

토끼 눈사람이 놀라듯 두 귀를 쫑긋 세웠다.
“안녕… 태연이…”

“우와아! 말도 해!”

“응. 네가 날 만들었잖아. 그리고 외롭다고 했지? 그래서 깨어났어.”


3장. 한밤의 눈밭 친구

토끼 눈사람은 자기를 “눈코토”라고 소개했다.
“눈으로 만든 토끼라서, 눈+코끼리+토끼 = 눈코토!”

“근데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었어?”

“처음엔 네가 진짜 진심인지 몰랐어. 하지만 매일 와서 말을 걸고, 목도리도 해주고… 그래서 눈의 요정들이 나를 잠깐 살게 해줬어.”

“잠깐…?”

“응. 아침이 되면 난 움직일 수 없어. 낮에는 눈사람으로 돌아가야 해.”

태연이는 깜짝 놀랐다.
“그럼 매일 밤에만 놀 수 있는 거야?”

“그래도 괜찮다면, 오늘부터 매일 밤 놀자.”

그날부터 태연이는 잠든 척하다가 몰래 일어나 눈코토와 밤하늘 아래서 놀았다.
눈싸움, 썰매, 눈 위에 그림 그리기, 얼음별 수집하기…

그리고 매번 새벽이 오기 전, 눈코토는 마당 한복판에 돌아가 조용히 서 있었다.


4장. 눈사람들의 세계

어느 날 밤, 눈코토는 태연이를 데리고 특별한 곳으로 안내했다.
“오늘은 네게 우리 세계를 보여줄게.”

눈코토가 앞장서자, 하얀 안개 속에서 반짝이는 눈의 문이 열렸다.

“여긴…?”

“눈사람들의 세계, ‘설백의 들판’이야.”

그곳엔 다양한 동물 눈사람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눈펭귄, 눈고양이, 눈여우, 그리고 눈사자까지!

“여기서는 모든 눈사람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어. 단, 인간 친구 한 명만 들어올 수 있어.”

태연이는 눈사람들과 친구가 되었고, 눈의 왕인 ‘설왕’도 만났다.
“너는 진심으로 눈을 사랑하는구나. 그런 아이만이 여기에 올 수 있단다.”

눈코토는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이 세계도 오래 열 수는 없어. 점점 따뜻해지고 있거든.”


5장. 눈이 사라진 마을

며칠 후부터 갑자기 눈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마당의 눈도 빠르게 녹았고, 기온은 봄처럼 따뜻해졌다.

“눈코토… 어떡해?”

“아마 며칠 후면 난 다시 눈으로 돌아가… 그리고 사라질 거야.”

“안 돼…! 나랑 더 놀기로 했잖아!”

눈코토는 슬프게 웃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눈을 부를 수 있는 ‘눈꽃의 종’을 너에게 줄게.”

“그건 뭐야?”

“진심으로 울리면 단 하루, 너와 함께할 수 있는 눈세상이 펼쳐져.”


6장. 눈꽃의 종

눈코토가 떠나기 전날 밤, 태연이는 종을 꺼내 들었다.
눈은 이미 다 녹았고, 눈코토는 작고 말라가는 눈덩이처럼 앉아 있었다.

“태연아… 종을 울려줘.”

“그럼 널 다시 볼 수 있어?”

“단 하루만. 대신, 그 하루는 영원처럼 반짝일 거야.”

태연이는 종을 울렸다.
맑은 소리가 퍼지자 하늘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폭풍처럼, 그러나 부드럽게.

그날 마을 전체에 눈이 펑펑 내렸다.
사람들은 모두 놀랐지만, 태연이만은 알고 있었다.

그건 눈코토가 마지막으로 주는 선물이라는 걸.


7장. 다시 만날 그날까지

눈으로 가득 찬 마지막 밤.
태연이와 눈코토는 설백의 들판을 다시 뛰놀았다.
“넌 내 가장 좋은 친구야.”

“나도, 태연이와 보낸 시간은 모두 녹지 않고 내 마음에 남을 거야.”

새벽이 다가왔고, 눈코토는 천천히 빛으로 변해갔다.
“언젠가… 네가 다시 진심으로 눈을 그리워하면… 나는 또 올 수 있어.”

눈코토의 마지막 말과 함께, 조용히 눈발이 멎었다.


8장. 눈의 기억

봄이 오고, 꽃이 피었다.
하지만 태연이 방 창문에는 늘 눈꽃 모양의 작은 장식이 걸려 있었다.

친구들이 물으면, 태연이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건… 겨울 친구와의 약속이야.”

그리고 그날 이후 매해 겨울이 오면 태연이는 첫눈이 내리는 날 눈코토를 만들었다.
혹시라도, 다시 깨어날까 하고.

그리고 언젠가, 정말 다시 눈코토의 귀가 깜빡 움직였다고—태연이는 말하곤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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