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 심연, 대왕물고기
제1장. 호숫가의 소녀
푸른 산맥이 멀리 둘러싸고 있는 마을, 그 가운데 고요한 호수가 있었다. 그 호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푸른 거울'이라 불릴 만큼 맑고 깊었지만, 동시에 누구도 끝을 본 적 없는 신비한 호수였다.
열한 살 소녀 태연이는 마을 북쪽의 언덕 아래 작은 집에 살았다. 태연이는 호숫가에서 하루하루를 보냈고, 누구보다도 그 호수를 사랑했다. 그녀의 엄마는 매일같이 말하곤 했다.
“호수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생명체가 살고 있단다. 그 물고기는 무려 천 년을 살았다고 해.”
태연이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두 눈을 반짝이며 되물었다.
“정말이야? 대왕물고기 진짜 있어요?”
엄마는 웃으며 태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믿는 사람만이 알게 되는 법이야.”
제2장. 사라진 달밤의 물결
어느 날 밤, 태연이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창문 너머로 들리는 물결 소리, 평소보다 훨씬 깊고 무거운 파동이었다. 창문을 열어보니, 호수 위에 둥근 보름달이 비치고 있었고, 물결이 예전과 달리 살아 숨 쉬는 듯 출렁였다.
그 순간, 호수 중앙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대왕물고기…?”
태연이는 그 소리에 매료되어 조심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발끝이 호숫가의 물을 스치자, 물속에서 조용히 눈을 뜨는 존재가 있었다. 하지만 태연이는 그것을 보지 못했다. 그날 밤 이후, 마을 사람들은 호수의 물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제3장. 사라진 물과 전설
며칠 후, 마을의 어르신들이 모여 앉았다. 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왕물고기가 잠에서 깨어났어. 호수의 물을 삼키고 있단다.”
“그럼 마을이… 마르게 되는 건가요?”
“그렇지. 대왕물고기는 천 년 동안 슬픔을 삼켜왔고, 다시 인간의 욕심이 호수를 어지럽히면 잠에서 깨어 호수를 되찾는다는 전설이 있지.”
태연이는 그 이야기를 듣고 결심했다.
‘내가 가서 대왕물고기를 만나볼 거야.’
제4장. 잠수, 심연으로
태연이는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도록 엄마가 준 작은 수정 목걸이를 목에 걸고, 홀로 호수로 들어갔다. 수면 아래는 상상도 못할 세계였다. 물풀은 마치 손처럼 흔들렸고, 고요함 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호수는 단순한 물이 아니라, 시간의 층이었다. 오래된 기억, 과거의 바람, 울음소리, 기쁨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태연이는 거대한 존재와 마주했다.
그것은 금빛과 녹색이 뒤섞인 비늘을 가진, 수십 미터 길이의 대왕물고기였다. 물고기의 눈은 슬픔과 지혜로 가득 차 있었다.
제5장. 대왕물고기의 이야기
“태연아…”
물고기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태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는 아주 오래된 바람 같았다.
“나는 천 년 전, 이 호수를 지키던 정령이었단다. 인간들이 처음 호숫가에 터를 잡고, 삶을 시작하던 그날부터 이곳을 지켜왔지.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호수를 함부로 대하기 시작했단다.”
태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직도 이 호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우리 엄마도 그래요.”
“그래서 너를 불렀단다. 너는 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야.”
제6장. 깨진 균형
대왕물고기는 말했다. “호수의 균형은 무너졌단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인간들은 물을 가두고, 흘러야 할 강줄기를 끊었지. 그로 인해 나는 점점 깨어났고, 지금은 물이 나를 위해 움직이게 된 것이란다.”
“그럼, 마을이 마르게 되는 건 대왕물고기 때문이 아니라…?”
“맞아. 인간이 만든 갈증이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는 중이지.”
태연이는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마을의 어른들이 대왕물고기를 탓하고 있었지만, 실상은 인간의 이기심이 문제였던 것이다.
제7장. 물의 맹세
“태연아. 만약 네가 이 호수를 다시 살리고 싶다면, 하나의 맹세를 해야 해.”
“맹세요?”
“물을 아끼고, 흐름을 막지 않겠다고. 그리고 다시는 자연을 인간의 것처럼 다루지 않겠다는 약속이지.”
태연이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진심으로 말했다.
“약속할게요. 제가 지킬게요.”
그 순간, 대왕물고기의 눈에서 한 줄기 빛이 흘렀다. 그 빛은 태연이의 목걸이로 흘러 들어갔고, 수정은 푸른 물빛으로 빛났다.
제8장. 깨어나는 호수
그 날 이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마을의 마른 땅에 다시 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메말랐던 샘들이 다시 솟구쳤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놀라며 태연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태연이는 웃으며 대답했다.
“호수가 깨어났어요. 대왕물고기는 우리를 미워한 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잘못한 걸 알려주고 싶었던 거예요.”
제9장. 다시 흐르는 세계
그 후 마을은 변했다. 사람들은 물을 아끼고, 호수 주변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았다. 태연이는 물을 가르치는 아이가 되었고, 대왕물고기의 이야기를 전하는 ‘물의 수호자’가 되었다.
가끔 밤이 깊어지면, 호수 중앙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비친다. 그것은 대왕물고기였다. 그는 여전히 호수를 지키고 있었고, 다시 인간과의 약속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태연이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진짜 전설은, 믿는 자의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제10장. 맑은 마음의 세계
어느 날, 태연이는 다시 호수 아래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왕물고기와 마주한 그곳에서 새로운 존재들을 만났다. 물의 요정들, 바람을 타고 온 말 없는 정령들, 빛의 조각들까지…
그 세계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순수함이 머무는 곳이었다.
태연이는 그곳에서 배운 것을 기억하며, 매일 아침 호수에 인사했다.
“안녕, 대왕물고기. 오늘도 잘 지내요?”
물결은 잔잔히 흔들리며 대답했다.
“태연아, 고맙구나. 네 마음은 곧 물이란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와 전설은 태연이의 삶과 함께 흐르며 계속되었다.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