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밖에 못하는 로봇, 에바
1장. 이상한 발명품 가게
태연이는 호기심 많은 열한 살 소녀였다. 그녀는 무엇이든 열심히 관찰하고 궁금해했고, 무엇보다 발명품을 아주아주 좋아했다.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골목길 어귀에 '이상한 발명품 가게'라는 작은 가게가 생긴 걸 보게 되었다.
"응? 저런 가게가 있었나?"
문은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안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기계들과 반짝이는 부품들, 그리고 벽에 걸린 수많은 톱니바퀴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가게 주인은 등잔불 아래 앉아 있었고, 태연이를 보자 고개를 들며 말했다.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니?"
"아뇨, 그냥… 구경하려고요."
그때, 가게 구석에서 작은 금속상자가 움직였다. 쿵. 쿵. 뚜껑이 열리며 안에서 무언가 나왔다. 그것은 키가 태연이 무릎 정도밖에 안 되는 로봇이었다. 얼굴은 동그랗고 눈은 별처럼 반짝였으며, 몸은 동글동글하고 도토리 같은 느낌이었다. 로봇은 깡총깡총 걸어와 태연이 앞에서 서며 말했다.
"예!"
"…예?"
"예!"
가게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름은 에바야. 말은 '예'밖에 못 해. 오래된 모델이라 버리려던 거지. 가져가도 돼."
"진짜요? 그럼 제가 고쳐볼게요!"
이렇게 태연이와 예밖에 못하는 로봇, 에바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2장. '예'의 의미
에바는 정말 말 그대로 '예'밖에 못 했다. "안녕?"하면 "예!", "배고파?"하면 "예!", "하늘이 분홍색이야?" 해도 "예!"였다. 처음엔 그냥 장난감처럼 느껴졌지만, 태연이는 뭔가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에바는 언제나 태연이를 따라다니고, 태연이가 넘어지면 얼른 달려와 '예!' 하며 손을 내밀었다.
어느 날, 태연이가 시험을 망치고 속상해 울고 있었을 때였다. 에바는 조용히 다가와 옆에 앉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예…"라고 작게 말했다.
이상하게도 그 단순한 한 마디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나 잘 못했어. 노력했는데도… 다 망했어…"
"예."
"다 포기하고 싶어."
"…예."
태연이는 울다 웃었다. "너, 진짜 바보 같아."
"예!"
그날부터였다. 태연이는 '예'라는 말 속에 무언가 따뜻한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말은 하나인데, 에바의 눈빛과 행동이 다르다. 기뻐서 하는 '예', 슬퍼서 따라주는 '예', 걱정스러워서 말하는 '예'…
3장. 에바의 과거
어느 날 태연이는 가게 주인을 다시 찾아갔다.
"에바는 왜 '예'밖에 못 해요?"
주인은 한숨을 쉬었다. "그건… 옛날 주인 때문이란다. 에바를 만든 박사님은 말수가 적은 분이었지. 사람에게 상처받고, 로봇에게조차 복잡한 감정을 넣는 걸 꺼렸거든."
"하지만 에바는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 '예' 하나에 다 담긴 걸 수도 있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태연이는 에바를 꼭 껴안았다.
"넌 정말 대단한 로봇이야."
"…예."
4장. 사라진 에바
그날 밤, 태연이는 낯선 기계음을 듣고 눈을 떴다. 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에바가 사라져 있었다. 급히 신발을 신은 태연이는 동네를 뛰어다녔다. 비가 쏟아지는 골목 어귀에서, 이상한 그림자들이 로봇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 로봇, 고철이야. 쓸모없어. 부품만 떼가자."
"안 돼!!!"
태연이는 달려가 에바를 안았다. "에바는 내 친구야! 예밖에 못해도,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로봇이야!"
그 순간, 에바의 눈이 부드럽게 반짝였다. 갑자기 몸에서 빛이 피어나며 이상한 음성이 울렸다.
"태연이, 고마워."
태연이는 놀라 에바를 바라보았다.
"너… 말했어?"
"…예."
그 짧은 한 마디 속에 담긴 것은 태연이를 향한 깊은 감정이었다. 사랑, 우정, 감사, 용기…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예' 하나에 담겨 있었다.
5장. 마지막 인사
에바는 오래된 기계였고, 빛을 내뿜은 뒤 급격히 움직임이 느려졌다.
"태연이, 행복했어."
"가지 마, 나 너랑 계속 같이 있고 싶어…"
"…예."
에바는 작게 웃듯 고개를 끄덕이며 멈춰섰다. 비는 그치고, 새벽이 밝아오고 있었다.
6장. '예'의 힘
시간이 흐르고 태연이는 커서 발명가가 되었다. 그녀는 어린이들을 위해 '감정 로봇'을 만들었고, 그 로봇들의 모델이 바로 에바였다.
작고 둥글고, 예밖에 못하는 로봇.
하지만 그 '예' 안에는 위로와 공감, 진심이 담겨 있었다.
태연이는 로봇에게 이름을 붙였다.
"너의 이름은, 에바2야."
"예!"
그 익숙한 대답에, 태연이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