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읽어줄 이야기

★《태연이와 얼음과일 왕국의 비밀》

newb1230 2025. 6. 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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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태양이 아지랑이처럼 마을을 흔들던 날, 열 살 소녀 태연이는 집 앞 골목길의 느티나무 아래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앉아 있었어요. 손에는 반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 들려 있었고, 얼굴엔 시무룩한 표정이 가득했지요.

“아, 왜 여름은 이렇게 더운 거야... 차라리 냉장고 안에서 살고 싶다.”

그때였어요. 바람도 한 점 없던 하늘에서 갑자기 차가운 바람이 쌩 불어오더니, 태연이의 앞에 작은 사과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어요. 하지만 이 사과는 평범하지 않았어요. 겉은 반투명한 유리처럼 맑고, 안에는 눈꽃이 소용돌이치는 것처럼 반짝였지요.

“우와, 이게 뭐지?”
태연이가 사과를 만지는 순간, 사과는 파르르 떨리더니 눈송이처럼 사라졌고, 눈앞에 눈부신 문 하나가 열렸어요. 문 안에서는 얼음 수정으로 된 계단이 내려오고, 시원한 공기와 함께 은은한 과일 향기가 퍼졌지요.

“어서 와, 얼음과일 왕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맑은 목소리. 태연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어요.
“저기요… 누구세요? 여기가 어디예요?”

계단 아래에서 반짝이는 눈망울의 여자아이가 올라왔어요. 하늘색 머리에, 도토리처럼 작은 왕관을 쓴 아이였어요.
“나는 딸기핑! 얼음과일 정령 중 하나야. 태연이, 너는 우리가 기다리던 아이야.”

“기다리던 아이요? 제가요?”
태연이는 얼떨떨한 채로 딸기핑을 따라 얼음계단을 내려갔어요. 문이 닫히는 순간, 세상은 완전히 변했어요. 눈처럼 하얀 들판, 얼음나무에 열린 다양한 과일들,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포도풍선과 사과기차. 여기는 진짜로 꿈에서나 나올 법한 얼음과일 왕국이었어요.

“이 세계엔 특별한 과일들이 자라. 바로 ‘얼음과일’이지. 평범한 과일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에 따라 맛과 힘이 변한단다.”

딸기핑은 태연이를 과일 정원이 있는 궁전으로 데려갔어요. 그곳에는 레몬처럼 생긴 초록색 얼음과일 나무, 복숭아처럼 보이지만 속이 파란 얼음복숭아, 그리고 완전히 투명한 얼음체리들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지요.

“근데 왜 제가 필요한 거예요?”
태연이가 물었어요.

딸기핑은 잠시 슬픈 얼굴을 하더니 말했어요.
“얼음과일 왕국은 원래 누구나 마음의 열기를 식히고,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는 휴식의 세계였어. 그런데 어느 날, '태양열 정령'이라는 존재가 찾아와 이 세계의 균형을 깨뜨렸어. 그가 만든 '과열 과일'은 먹으면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고, 참을성을 잃게 만들지.”

“그럼, 얼음과일로 그걸 막을 수 있나요?”
태연이의 질문에 딸기핑은 고개를 끄덕였어요.

“맞아. 그런데 문제는, 얼음과일을 제대로 익히려면 ‘마음이 시원한 아이’가 필요해. 그런 아이만이 얼음과일의 힘을 일깨울 수 있거든.”

“그게 저라구요?”
“응. 너는 분노 대신 기다릴 줄 알고, 욕심 대신 나눌 줄 아는 마음을 가졌지. 그러니 너는 ‘순수 온도’가 가장 안정적인 아이야.”

그렇게 해서 태연이는 얼음과일을 수확하고, 가꾸는 훈련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얼음체리를 따자마자 손이 얼고, 얼음포도를 먹자 입안이 너무 시려서 눈물을 흘렸지만, 점점 익숙해졌어요.

어느 날, 얼음과일 궁전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어요. 태양열 정령이 왕국에 나타난 거예요. 그는 불타는 고추처럼 생긴 날개를 달고 있었고, 손에는 ‘태양과일’이라 불리는 강렬한 주황색 과일이 들려 있었어요.

“이제 너희의 시원한 세계는 끝났다. 모든 마음은 뜨겁고 화나야 해. 그래야 진짜 강해지는 거야!”

딸기핑은 겁을 먹었지만, 태연이는 물러서지 않았어요.
“화가 나면 세상이 더 뜨거워져요. 하지만 차분해지면 서로를 안아줄 수 있잖아요.”

태양열 정령은 비웃듯 웃었어요.
“그럼 네가 나를 멈춰봐라!”

태연이는 조용히 가슴에 품고 있던 ‘얼음블루베리’를 꺼냈어요. 그것은 태연이가 자신을 위해 만든, 가장 사랑스러운 과일이었어요. 엄마와 함께 만들었던 빙수의 기억, 친구와 웃으며 나눠 먹던 과일샐러드, 동생과 장난치다 무심코 준 냉동 포도… 그 기억들이 블루베리에 담겨 있었죠.

그것을 딱 한 입, 태연이는 태양열 정령에게 건넸어요.
“이건 내 마음이 담긴 과일이에요. 한 입만 드셔보세요.”

정령은 처음엔 비웃었지만, 입에 넣는 순간 놀란 눈으로 멈췄어요.
그는 눈을 감고 속삭였어요.
“이 차분함은… 오래된 기억… 나도 한때, 얼음과일이었지...”

이윽고 태양열 정령의 몸에서 불꽃이 사라지고, 눈물처럼 투명한 얼음방울이 맺혔어요. 그리고 그는 말없이 하늘로 사라졌어요.

왕국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얼음과일은 더욱 풍성하게 열리기 시작했어요.
태연이는 잠시 후 돌아가야 했지만, 딸기핑은 특별한 선물을 주었어요.

바로 ‘차가운 과일열쇠’가 담긴 목걸이였어요.
“이걸 가지고 있으면, 언제든 마음이 뜨거워질 때 얼음과일 왕국에 다시 올 수 있어.”


태연이는 문을 통해 다시 현실로 돌아왔고, 눈을 떠보니 손에는 처음 보았던 투명한 사과가 들려 있었어요. 더운 골목길은 여전히 땡볕이었지만, 왠지 마음은 한결 시원해진 느낌이었어요.

그날 이후, 태연이는 친구들과 함께 차가운 과일을 나누는 걸 좋아하게 되었어요. 냉동 바나나, 얼린 키위, 차가운 수박 얼음까지! 마치 얼음과일 왕국의 정령이 된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누군가 짜증을 낼 때면, 태연이는 조용히 웃으며 말하곤 했어요.
“잠깐, 얼음과일 한 입 먹고 생각해보자~ 마음도 시원해질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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