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이와 말만 하는 멍청이 나라
제1장: 시끄러운 소문
태연이는 어느 날 학교에서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 반 친구 주원이 말하길, 뒤뜰 놀이터를 지나 오래된 도서관 뒷길로 가면 '멍청이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그곳엔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대. 모두가 자기 말만 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아서, 매일매일 말싸움이 벌어진다고 했지.
“거기서 제일 말 많은 애는 ‘나나나왕’이래. 하루에 자기 이름만 천 번 외친대!”
태연이는 웃었지만, 마음속엔 왠지 모를 궁금함이 생겼어. ‘도대체 왜 남의 말을 안 듣는 걸까? 정말 그런 나라가 있을까?’
제2장: 책장 뒤의 세계
그날 저녁, 태연이는 동네 도서관에 들렀어. 구석에 있는 낡은 책장을 살펴보던 중, 바닥에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을 발견했지. 조심스레 손을 뻗자, 책장이 부르르 떨리더니 통로가 열렸어.
“으악… 여긴 어디지…?”
태연이가 통로를 따라 들어서자, 알록달록한 풍선과 대사 말풍선들이 떠다니는 세계가 펼쳐졌어. 입구엔 큼직한 간판이 있었어.
‘멍청이 나라에 온 걸 환영합니다!’
그 밑에는 작게 쓰여 있었지. ‘※ 여긴 다들 자기 말만 합니다. 경고 끝!’
제3장: 첫 번째 마을 – 엉터리 마을
태연이가 처음 도착한 마을은 ‘엉터리 마을’. 이곳의 사람들은 대화가 되지 않았어. 태연이가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해도,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지. 오히려 어떤 아저씨는 자기 얘기만 마구 해댔어.
“내 말이 맞거든! 내가 어제 뭐 했는 줄 알아? 고구마를 열여덟 개나 먹었다니까!”
옆에 있던 아주머니도 대꾸했지만, 그녀도 자기 얘기만 했어.
“고구마? 그딴 거 말고 나는 감자. 감자가 최고야. 내가 만든 감자찜은 전국 1등이라고!”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마구 자기 이야기만 했어.
“여긴 너무 시끄러워… 아무도 듣질 않아…”
태연이는 속이 답답해졌지.
제4장: 나나나왕의 궁전
말풍선이 휘몰아치는 큰 언덕 위, 말의 왕이 살고 있었어. 그는 바로 ‘나나나왕’. 온 궁전 벽에는 그가 했던 말들로 가득했지.
“나 짱! 나 최고! 나 제일 똑똑해! 나, 나, 나!”
태연이는 용기를 내어 왕을 찾아갔어. 궁전 문을 열자마자, 귀를 찢을 듯한 소리들이 울려 퍼졌어.
“나! 나! 나아아앙!!”
태연이는 손으로 귀를 막으며 외쳤어. “제발! 잠깐만 조용히 해주세요!!”
하지만 나나나왕은 멈추지 않았어. 그는 듣지도 않고, 자기 말만 계속 중얼거렸지.
태연이는 꾹 참고 그에게 다가갔어. 그리고 손에 쥐고 있던 작은 종이컵을 꺼냈어.
제5장: 종이컵 전화기
“이건, 우리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종이컵 전화기에요.”
태연이는 종이컵 전화기 하나를 자신의 입에 대고, 다른 하나를 왕의 귀에 댔지.
“이건… 듣기 위한 전화기에요. 들어야만 들리는… 그런 거예요.”
순간, 나나나왕은 멈칫했어. 귀에 닿은 종이컵에서 아주 작고 조용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야.
“안녕하셨어요? 저는 태연이에요. 잠깐…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왕은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천천히 종이컵에 집중했어. 종이컵을 통해 들려오는 태연이의 조용한 목소리는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던 노래처럼 다정했지.
제6장: 나라가 조용해진 날
그날 밤, 멍청이 나라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사람들이 갑자기 조용해졌거든. 아니, 조용한 게 아니라 ‘들으려 하기’ 시작했지.
“응? 방금 뭐라고 했어?”
“너 감자 좋아한다고? 왜 그걸 좋아해?”
태연이는 깜짝 놀랐어. 이제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묻고, 대답하고, 웃고 있었어. 멍청이 나라엔 처음으로 진짜 ‘이야기’가 오고 간 거야.
나나나왕은 태연이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어.
“나는 사실… 항상 말했지만, 아무도 내 이야기를 진짜 들어주지 않았어. 그래서 점점 더 큰 소리로, 더 많이 말하게 됐던 거야…”
“이제부터는, 들으면서 말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태연이는 말했어.
왕은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 궁전 꼭대기에 이렇게 써넣었지.
‘진짜 대화는, 들어주는 데서 시작된다.’
제7장: 다시 도서관으로
태연이는 다시 빛나는 통로를 따라 도서관으로 돌아왔어. 돌아오자마자 책장이 조용히 닫히고, 모든 게 다시 평범해졌지.
하지만 그날 이후, 태연이는 달라졌어. 친구가 무슨 말을 하든 끝까지 듣고, 동생이 투덜거려도 조용히 들어주었지.
그럴 때마다 태연이는 속으로 중얼거렸어.
“멍청한 건… 말만 하는 게 아니야. 남의 마음을 안 들으려는 거야.”
그리고 웃었어. 자신도 말보다 더 중요한 걸 알게 되었으니까.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