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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읽어줄 이야기

★《태연이와 시간의 뱅글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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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잃어버린 안경, 그리고 낡은 서점

태연이는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도서관보다 더 좋아하는 곳은 바로 골목 끝의 헌책방, ‘타임북스’였다. 이곳은 늘 쿰쿰한 냄새와 종이의 따스함이 어우러진 이상한 분위기를 품고 있었다. 주인은 언제나 뭔가 비밀스러운 미소를 짓는 노인이었다.

어느 날, 태연이는 생일 선물로 받은 뱅글뱅글 둥근 안경을 잃어버렸다. 엄마가 사준 거라 속상했지만, 태연이는 그 안경 없이도 책을 읽으려고 헌책방에 들어갔다. 그때, 주인이 말했다.

“안경을 잃어버렸다고? 혹시… 이런 안경이었니?”

그는 낡은 유리 상자에서 오래된 뱅글안경 하나를 꺼냈다. 금속 테두리는 얇고 둥글었고, 렌즈는 보랏빛이 살짝 감돌았다. 태연이는 어쩐지 이 안경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았다.

“한 번 써보겠니?”

태연이는 망설임 없이 안경을 썼다. 순간, 주위 풍경이 흔들리며 완전히 변했다. 책방이었던 공간은 사라지고, 끝없이 펼쳐진 계단과 시계, 떠다니는 책들로 가득한 공간—‘시간의 복도’가 나타났다.


2장. 시간의 복도

“어서 와, 시간 여행자.”

공중을 떠다니는 시계 하나가 태연이에게 말을 걸었다. 그 시계는 이름이 ‘틱톡’이었고, 이 안경은 단순한 돋보기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보는 렌즈였다.

“이 뱅글안경은 특별하지. 착용한 자는 시간의 경계 너머를 볼 수 있고,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 수 있어.”

태연이는 무척 당황했지만, 동시에 가슴이 두근댔다. 시간이 보인다고? 책으로만 읽던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틱톡은 태연이를 한 문 앞까지 안내했다. 문에는 ‘과거의 복도’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태연이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3장. 사라진 언니

문 너머에서 태연이는 낯선 장면을 목격했다. 놀이터,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아이, 그리고 그 옆의 누군가—그건 바로 태연이 자신이었고, 옆에는 잊고 있던 누군가가 있었다. 바로 사라진 언니, ‘다연’이었다.

태연이의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남아 있던 그 얼굴, 다연 언니는 어릴 적 사고로 실종된 이후 가족 누구도 그녀에 대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안 돼, 언니!”

태연이는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건 과거. 안경은 보여주기만 할 뿐, 개입은 허락되지 않았다.

틱톡이 말했다. “과거는 기억되고, 미래는 그려진다. 하지만 이 안경의 진짜 힘은 ‘선택’에 있어.”

태연이는 마음을 굳혔다. 언니를 되찾기 위해, 시간의 복도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로.


4장. 고장난 시계탑

태연이는 시간의 복도를 지나 ‘미래의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거대한 시계탑이 있었고, 중심축이 망가져 있어 시간이 제대로 흐르지 않았다. 그 영향으로 곳곳에 시간의 틈이 생겨 ‘무너지는 기억들’이 떠돌고 있었다.

그곳에서 태연이는 또 다른 존재를 만났다. 이름은 ‘미스 디스토션’. 시간 왜곡의 주인이자, 이 안경의 옛 소유자였다. 그녀는 안경의 힘을 탐내다 과거에 갇혀버린 영혼이었다.

“그 안경, 나에게 넘겨. 넌 아직 시간의 무게를 모른단다.”

“안 돼요. 이건 제가 언니를 찾기 위해… 제 과거를 바로잡기 위해 쓰는 거예요.”

미스 디스토션은 웃으며 시계의 태엽을 감았다. 그 순간 태연이는 기억 속 어둠 속으로 빨려들었다.


5장. 마음의 시계

그곳은 태연이의 마음 속이었다. 안경을 통해 되비춰진 깊은 내면의 공간. 이곳에서 태연이는 자신이 잊어버린 순간들—다연 언니와 웃으며 놀던 여름날, 함께 만든 나무 시계, 그리고 언니가 사라지던 날의 마지막 말—을 다시 떠올렸다.

“태연아, 네가 나를 기억해 준다면, 나는 사라지지 않아.”

이 기억을 되찾자, 안경의 렌즈가 빛났다. 틱톡이 외쳤다. “자, 마지막 선택이야. 과거를 바꾸고 싶다면, 시계탑의 태엽을 거꾸로 돌려!”

태연이는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순간 멈칫했다.

‘만약 언니를 되찾는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될까?’

그녀는 깊이 숨을 쉬고, 태엽을 앞으로 감았다.


6장. 시간의 주인

“바꾸지 않겠어요. 과거는 내 일부니까요. 저는 그 기억을 안고 앞으로 가고 싶어요.”

태엽이 돌아가자 시계탑이 다시 작동했고, 무너졌던 시간의 복도도 원래대로 회복되었다. 미스 디스토션은 놀라 태연이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진짜 시간의 주인이 되었구나.”

그녀는 조용히 사라졌고, 안경은 태연이의 눈에서 반짝였다. 뱅글안경은 이제 시간의 흐름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7장. 새로운 기록자

태연이는 현실로 돌아왔다. 타임북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주인은 조용히 책 한 권을 내밀었다.

“이제 너도 시간의 기록자야. 앞으로는 네가 이 안경을 쓰고, 사람들의 잊혀진 순간을 기록하겠니?”

태연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안경을 벗어 안경집에 넣으며 미소 지었다.

언니의 얼굴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기억 속에서 살아 있는 한, 그녀는 언제나 함께였다.


8장. 안경집 속 별빛

몇 년 후, 태연이는 작은 서점을 열었다. 이름은 ‘별빛 안경점’. 손님이 들어오면 태연이는 안경을 권하고, 그들이 잊은 기억들을 되찾게 도와주었다.

안경집 속 뱅글안경은 여전히 보랏빛으로 반짝였고, 태연이는 그 빛을 따라 새로운 시간을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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