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여름 끝의 호박잎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바람에 가을 내음이 실려오던 날.
태연이는 할머니 댁 마당에서 놀고 있었어.
할머니는 작은 텃밭에서 커다란 호박 줄기 사이를 조심조심 걷고 계셨지.
“태연아, 이 호박잎 좀 봐라. 여름 내내 햇살을 잔뜩 먹었단다.”
할머니는 호박잎 하나를 따서 보여주셨어. 푸르지만 가장자리가 부드럽고, 촉촉하게 물기가 도는 그 잎은 마치 커다란 손바닥 같았지.
태연이는 손으로 쓰다듬으며 물었어.
“할머니, 이 호박잎은 뭐에 써요?”
“응, 이건 말이야… 그냥 잎이 아니야. 옛날 옛적에는 이걸로 정원 문을 열 수 있었단다.”
“정원 문이요? 호박잎으로요?”
할머니는 장난기 가득한 눈으로 웃으셨어.
“그건 아주 특별한 호박잎일 때만 가능한 이야기지.”
그날 밤, 태연이는 베개 옆에 호박잎 하나를 조심스레 두고 잠이 들었어. 그리고 꿈속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지.
2장. 호박잎 문을 여는 주문
바람이 사르르 불어오고, 태연이는 눈을 떴어.
그녀가 누운 곳은 더 이상 할머니 방이 아니었어. 바닥은 초록 이끼로 덮여 있었고, 주위엔 수풀과 나무들이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지.
“여긴… 어디지?”
그 순간, 호박잎이 반짝이며 태연이 손 안에서 떠올랐어. 그리고 작은 목소리가 들렸지.
“호박잎을 펼치면, 잊혀진 정원의 문이 열립니다.”
태연이는 호박잎을 두 손으로 조심히 펼쳤어. 그 순간, 앞에 있던 덤불이 사르르 갈라지더니, 금빛으로 빛나는 아치형 문이 나타났어. 문의 가운데엔 작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만이 이 문을 열 수 있다.”
태연이가 문에 손을 대자, 빛이 번쩍이고 문이 열렸어. 문 안쪽은 마치 마법세계 같았지 —
공중에 떠 있는 호박, 나무 위에 사는 고양이 요정들, 노란빛이 나는 벌레들과 말하는 식물들…
그리고 이 정원의 중심엔… 바로 호박의 여왕이 있었어.
3장. 호박의 여왕, 누리아
여왕 누리아는 반짝이는 호박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눈빛은 어른스럽고도 따뜻했어.
그녀는 태연이를 보자 살짝 고개를 숙였어.
“오, 오랜만에 진심 어린 호박잎을 들고 온 아이로구나.”
태연이는 조심스럽게 말했어.
“이곳이… 할머니가 말하던 정원이 맞나요?”
누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지.
“이곳은 세상의 숨겨진 상처와 이야기들이 쉬어가는 곳이야. 모든 호박잎엔 이야기가 깃들어 있거든.”
그녀는 태연이를 정원의 깊은 곳으로 이끌었어. 그곳엔 마치 병원처럼 보이는 연못과, 손에 붕대를 감은 동물들과 울고 있는 식물들이 있었어.
“이 아이들은 모두 세상의 무관심과 잊힘 속에서 다친 존재들이야.”
4장. 치유의 호박잎
태연이는 연못 곁에서 상처 난 토끼를 발견했어.
이마엔 상처가 있고, 몸은 축 늘어져 있었지.
“아기 토끼야, 괜찮아?”
토끼는 작게 고개를 저었어. 그 순간, 호박잎이 다시 반짝이며 태연이 손에 떠올랐어.
이번엔 여왕의 목소리가 들려왔지.
“호박잎엔 생명을 감싸는 힘이 있어. 네가 진심으로 안아준다면, 잎이 치유의 장이 되어줄 거야.”
태연이는 조심스럽게 토끼를 안고, 호박잎으로 감싸주었어. 그러자 잎이 빛을 발하며 토끼의 상처가 사르르 낫기 시작했지.
토끼는 깡충깡충 뛰며 다시 웃었어.
그날부터 태연이는 정원 곳곳을 돌아다니며 호박잎으로 상처를 감쌌어.
부러진 나뭇가지, 속상한 꽃잎, 시들어가는 버섯들… 모두 태연이의 손길을 받고 다시 살아났지.
5장. 시든 호박잎, 사라지는 정원
그러나 어느 날, 호박잎이 시들기 시작했어.
태연이는 두려운 마음으로 여왕을 찾아갔지.
“잎이… 점점 약해지고 있어요.”
누리아는 태연이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어.
“호박잎의 힘은 마음의 순수함에서 나와. 하지만 너의 마음속 어딘가, 작고 검은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했어.”
태연이는 멈칫했어. 떠오르는 건, 며칠 전 엄마에게 화를 내고 문을 세게 닫았던 장면이었어.
“나…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말도 못 했어요…”
그 순간, 정원의 색깔이 점점 빛을 잃기 시작했어. 하늘은 회색으로 변했고, 식물들은 시들기 시작했지.
“이 정원은 네 마음과 이어져 있어. 마음속 미움이 많아질수록, 정원은 상처받게 되지.”
6장. 다시 피어나는 잎
태연이는 정원 한가운데에서 호박잎을 두 손으로 감쌌어.
“미안해요…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어요. 모두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가장 가까운 사람을 힘들게 했어요…”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그 눈물이 호박잎에 닿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시들던 잎이 천천히 초록빛을 되찾기 시작했고, 정원 전체가 점점 다시 환해졌지.
여왕 누리아는 미소 지으며 다가왔어.
“진정한 치유는 남에게 베풀기 전에, 스스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돼. 너는 그걸 해냈단다.”
7장. 돌아온 세상, 진짜 호박잎
눈을 떠보니 태연이는 다시 할머니 방이었어.
호박잎은 그대로 베개 옆에 놓여 있었고, 손엔 아주 작고 반짝이는 노란 빛의 씨앗이 쥐어져 있었어.
그날 이후 태연이는 다정한 말 한마디, 웃는 얼굴, 진심 어린 사과를 소중히 여기게 되었어.
그리고 가끔… 아주 가끔, 창밖에서 말하는 토끼가 호박잎을 들고 깡충거리며 웃고 있는 걸 보기도 했단다.
'아이에게 읽어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연이와 어린이집에 온 새로운 시아》🌟 (1) | 2025.05.13 |
---|---|
★🌿 《할머니의 집밥》 (2) | 2025.05.13 |
★🌟《태연이와 치유의 연고》 (0) | 2025.05.13 |
★《불닭 소스의 비밀 모험》 (0) | 2025.05.12 |
★🌟 《태연이와 여우꼬리의 비밀》 🌟 (0) | 2025.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