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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읽어줄 이야기

★《태연이와 해바라기씨앗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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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포근하게 내려앉은 어느 봄날 아침, 작은 마을의 언덕 위에 태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어요. 태연이는 언제나 웃는 얼굴에, 두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거리는 아이였죠. 그녀는 꽃을 사랑했어요. 특히 해바라기를.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는 걸 처음 들은 그날부터, 태연이는 마치 해바라기처럼 항상 밝고 따뜻해지려고 노력했어요.

태연이는 엄마와 함께 작은 정원을 돌보는 걸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 해 봄, 태연이는 전보다 훨씬 더 조용했어요. 할머니가 긴 병원 생활 끝에 별이 되신 이후,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 구멍이 뻥 뚫린 것 같았거든요.

“해바라기처럼 웃자고 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태연이는 혼잣말로 중얼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시장에 들렀던 태연이는 아주 낡은 목소리의 할아버지를 만났어요. 그는 작은 나무 상자 안에서 무언가를 고르고 있었는데, 태연이가 다가가자 할아버지는 손짓으로 부르며 이렇게 말했죠.

“작은 아가씨, 특별한 씨앗 하나 가져볼래? 이건 그냥 해바라기씨앗이 아니란다.”

태연이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씨앗은 회색빛 껍질에, 조금 낡고 말라 보였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것을 손에 쥐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어요. 마치 오래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했죠.

“이 해바라기씨앗은 약속을 품고 있단다. 진심으로 키우면, 가장 간절한 마음을 꽃으로 피워 줄 거야.”

할아버지는 미소 지으며 말했어요. 태연이는 씨앗을 받아 들고 고맙다고 인사했어요. 할아버지는 그 뒤로 시장 한구석으로 사라졌고,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어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요.

집에 돌아온 태연이는 조심스럽게 씨앗을 화분에 심었어요. 그리고 매일 정성껏 물을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넸어요.

“안녕, 오늘은 구름이 많지만, 너는 따뜻하길 바라.”

“내가 웃을 수 있게 도와줄래?”

“혹시 네가 자라면, 하늘나라에 있는 할머니가 내려다볼 수 있을까?”

씨앗은 작고 느리게 자랐어요. 다른 꽃들은 이미 피고 진 사이, 해바라기 화분은 줄기만 조금씩 늘어날 뿐 꽃은 피우지 않았죠. 친구들은 “태연아, 그거 죽은 거 아니야?”라며 웃었지만, 태연이는 고개를 저었어요.

“이건 마법 해바라기야. 아직 약속을 준비 중이야.”

어느 날 밤, 갑작스레 퍼붓는 비바람이 태연이의 정원을 덮쳤어요. 그녀는 걱정이 되어 비옷을 입고 밖으로 달려나갔어요. 해바라기 화분은 쓰러져 있었고, 잎은 몇 장 찢어져 있었어요. 태연이는 화분을 꼭 끌어안고 울기 시작했어요.

“제발… 약속했잖아. 할머니를 보여주겠다고…”

그때였어요. 태연이의 눈물 방울이 씨앗이 자란 줄기 끝에 떨어졌을 때, 아주 미세한 빛이 반짝였어요. 비가 잦아들고 하늘이 열리자, 구름 사이로 달빛이 비추었고, 해바라기 화분에서는 은은한 노란빛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그 빛은 해바라기의 꽃봉오리 속에서 나왔어요. 천천히 피어나기 시작한 꽃은 태연이가 본 어느 해바라기보다도 커다랗고 찬란했어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별빛으로 만든 것처럼요.

그리고 그 순간, 태연이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분명히 느꼈어요. 아주 따뜻하고 익숙한 손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죠.

“잘 있었니, 태연아?”

태연이는 눈을 떴고, 해바라기 꽃 중심에서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듯이 그려졌어요. 물론 진짜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 온기와 기분은 할머니 그대로였어요. 마치 꿈처럼, 마법처럼.

“보고 싶었어요, 할머니…”

“나도 보고 싶었단다. 이렇게 예쁜 마음으로 날 불러줘서 고마워. 태연이, 이제 너는 웃을 수 있겠니?”

태연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눈물이 흘렀지만, 이번엔 슬퍼서가 아니라 기뻐서였어요. 마음이 무겁지 않았어요. 해바라기씨앗이 정말 약속을 지켜준 거였어요.

그날 이후, 해바라기 화분은 시들지 않았어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와도, 꽃은 계속 피어 있었어요. 사람들은 그걸 “태연이의 기적 해바라기”라고 불렀어요. 마을 신문에도 실리고, 관광객들도 찾아올 정도였죠.

하지만 태연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어요. 그건 씨앗 속에 담긴 약속과, 마음의 힘이 이룬 기적이라는 걸요. 그녀는 해바라기 앞에 서서 매일 아침 인사했어요.

“안녕, 할머니. 오늘은 내가 더 많이 웃을게.”

그리고 시간이 흘러, 태연이는 어른이 되었어요. 도시로 떠나 공부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죠.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정원에 해바라기를 심으며 말하곤 했어요.

“이 씨앗에는 마음이 담겨 있어. 진심으로 바라면, 네 마음도 꽃처럼 피어날 수 있어.”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씨앗을 심었고, 태연이는 웃었어요. 그렇게 해바라기씨앗은 또 하나의 마음을 피워내고 있었어요. 태연이의 이야기는 단순히 꽃을 키운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을 키운 이야기였어요.

그리고 어쩌면, 그 마법의 씨앗을 건네준 할아버지도, 지금 어딘가에서 또 다른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특별한 약속을 담은 씨앗을 다시 전해주기 위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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