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언제나 내가 맞아!
태연이는 열 살이었고, 또래 아이들보다 똑똑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 아이였다. 책도 많이 읽고, 그림도 잘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주장이 뚜렷했다. 문제는, 그 주장을 너무 강하게 믿는 바람에 다른 사람의 말은 좀처럼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태연아, 오늘은 우산 챙겨야 해. 비 온대.”
“에이, 엄마 또 그래! 내가 방금 일기예보 봤는데 안 온다니까!”
결국 그날 태연이는 흠뻑 젖어 돌아왔다.
“태연아, 이 길 말고 저쪽으로 가야 돼. 여긴 공사 중이래.”
“괜찮아! 내가 아는 길이 더 빨라.”
하지만 태연이는 발이 빠져 진흙투성이가 됐다.
그럼에도 태연이는 항상 말했다.
“난 내가 제일 잘 알아. 다른 사람들은 내가 틀렸다고 해도, 내가 맞는 경우가 많다니까!”
그날도 그랬다. 마을 뒷산에는 이상한 바위가 있었고, 어른들은 모두 그 바위 근처에 가지 말라고 했다. 오래전부터 바위 속에는 ‘바람 정령’이 산다는 전설이 있었고, 정령의 경고를 무시하면 길을 잃고 마을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태연이는 코웃음을 쳤다.
“바람 정령이라니, 그런 게 어딨어? 전설은 그냥 옛날 이야기일 뿐이야.”
제2장. 바람을 거스르다
그날은 여름 방학 첫 주말. 태연이는 혼자 뒷산으로 올라갔다. 물통 하나와 작은 간식, 그리고 지도 한 장을 들고서.
바람은 평소보다 강하게 불고 있었고, 나뭇가지가 마치 말을 하듯 흔들렸다. 하지만 태연이는 바람 소리에 신경 쓰지 않았다.
“하… 진짜 시원하다. 사람들은 괜히 겁만 줘. 여긴 그냥 평범한 숲이야.”
하지만 바람은 계속 속삭였다.
― 돌아가라… 돌아가라…
“바람도 뭐 좀 그럴듯하게 말하네?”
태연이는 바위 주변에 도착했고, 그 위에 올라서며 손을 양옆으로 펼쳤다.
“이게 바로 태연이의 승리다! 바람 정령은 없었어!”
그 순간, 거대한 돌덩이가 ‘우우웅…’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갑자기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회오리바람이 숲을 감쌌다.
태연이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뭐야, 이거… 진짜… 무슨 일이야?”
하지만 바람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 넌… 우리의 경고를 무시했어…
제3장. 바람의 세계
눈을 뜬 태연이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었다. 하늘은 보랏빛이었고, 나무들은 공중에 떠 있었으며, 구름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여긴… 어디지?”
그때 바람처럼 움직이는 투명한 존재가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옷은 바람결처럼 찰랑이는 이상한 존재였다.
“나는 바람의 정령이자, 이 숲의 수호자. 넌 우리를 무시했지.”
“미… 미안해요. 그냥 옛날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 무시함이 널 이 세계로 이끌었고, 스스로 빠져나가기 전까진 다시 돌아갈 수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나갈 수 있는데요?”
정령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남의 말을 듣는 법을 배워야 해.”
제4장. 첫 번째 교훈 – ‘귀 기울임’
정령은 태연이를 ‘들리지 않는 마을’로 데려갔다. 그곳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말을 해도, 아무도 듣지 않았다. 모두 자기 생각만 말했다.
태연이가 소리쳤다.
“이쪽으로 가면 위험해요! 절벽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무시하고 걸어가다가 하나둘 절벽 끝에 멈춰 섰다. 태연이는 달려가 사람을 붙잡았다.
“왜 제 말을 안 들어요!”
그때 마을 어른이 말했다.
“우린 들을 수 있지만 듣지 않아. 모두가 자신이 맞다고 믿으니까.”
그 말에 태연이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엄마의 말, 아빠의 조언, 친구들의 걱정… 자신도 그들을 듣지 않았다.
“내가… 똑같았네…”
바람 정령이 나타나 말했다.
“깨달음을 얻었구나. 그럼 다음 세계로 가자.”
제5장. 두 번째 교훈 – ‘느리게 말하기’
다음에 도착한 곳은 ‘속삭이는 평야’. 이곳 사람들은 모두 천천히,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무 느려서 처음에는 답답했다.
“왜… 그렇게… 말해요…?”
태연이가 물었다.
“우리는 서로가 완전히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요. 빠른 말은 오해를 낳고, 느린 말은 마음을 전하죠.”
태연이는 처음엔 지루해했지만, 점점 그 느린 대화를 기다리게 되었다. 말을 아껴 듣고, 천천히 대답했다.
그 속에서 태연이는 처음으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는 법을 배웠다.
제6장. 세 번째 교훈 – ‘침묵의 힘’
마지막으로 도착한 세계는 ‘침묵의 섬’이었다. 이곳은 말이 금지된 곳이었다. 모두가 손짓과 눈빛으로 대화했다.
“이런 걸로 어떻게 소통을 해요?”
하지만 태연이는 곧 깨달았다. 어떤 말보다 더 정확하고 따뜻하게 마음이 전해진다는 것을. 눈빛으로 “고마워요”, 손짓으로 “도와줄게요”라는 말이 전해졌다.
그제야 태연이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듣고 이해하려는 마음이 중요했구나.”
바람 정령이 다시 나타났다.
“이제 넌, 돌아갈 수 있어. 단, 이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제7장. 다시 현실로
다시 눈을 뜬 태연이는 바위 위에 서 있었다. 해는 지고 있었고, 바람은 여전히 불고 있었다.
“꿈이었을까…?”
하지만 바람 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제 넌, 들을 수 있게 되었구나…
태연이는 마을로 돌아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다음부턴 일기예보 잘 챙길게. 그리고… 우산도 꼭 챙길게요.”
“응? 태연이가 웬일로 엄마 말을 듣네?”
“이젠 알아.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거.”
그 후 태연이는 친구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고, 아빠의 조언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더는 자신만이 맞다고 고집하지 않았다. 아니,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알고, 그래서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 바람이 살랑 불면 태연이는 미소 지으며 속삭인다.
“오늘은 무슨 말을 전하려고 그러는 거야, 바람아?”
[끝]
'아이에게 읽어줄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콜릿 스틱의 비밀 (1) | 2025.05.10 |
---|---|
★바보라고 부르는 로봇 (0) | 2025.05.10 |
★🍮《카라멜젤리 성의 비밀》🍮 (0) | 2025.05.10 |
★《블랙커피 마을의 비밀》 (0) | 2025.05.10 |
★🌟《고철로봇의 심장》🌟 (0) | 2025.0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