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울타리 밖은 무서워
태연이는 시골 할머니 댁에 놀러온 지 사흘째 되는 날, 마당 뒤편에 조그마한 토끼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하얀 털을 가진 토끼 한 마리가 쪼그려 앉아 있었는데, 무언가에 깜짝 놀랐는지 태연이가 가까이 다가가자 몸을 덜덜 떨었다.
“안녕? 나는 태연이야. 너는 이름이 뭐니?”
그러자 토끼는 작게 중얼거렸다.
“…난… 루루… 겁쟁이야…”
태연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하는 토끼는 처음이었으니까! 하지만 루루는 너무나도 겁이 많아 그 말조차도 속삭이는 수준이었다.
“겁쟁이라도 괜찮아! 내가 친구가 되어줄게!”
태연이의 말에 루루는 아주 살짝, 귀를 꼿꼿이 세우고 고개를 들었다.
제2장. 초대받지 않은 달빛
그날 밤, 달빛이 유난히 밝았다. 창밖에서 은은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고, 태연이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마당으로 나갔다. 루루도 토끼장 문이 열려 있는 걸 보곤 조심스레 뒤따라 나왔다.
정원 끝에는 은빛 문이 생겨 있었다. 태연이는 루루와 손(그리고 발)을 꼭 잡고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달빛이 가득한 숲이 있었다. 나무는 별처럼 반짝였고, 땅은 푸른빛 이끼로 덮여 있었으며, 공중에는 투명한 물고기들이 유영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달의 숲… 겁쟁이의 용기가 깃드는 곳이야…”
루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태연이는 무서워하는 루루의 등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함께라면 괜찮을 거야.”
제3장. 울음소리의 언덕
달의 숲 한가운데에는 ‘울음소리의 언덕’이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태연이와 루루는 우는 듯한 바람 소리를 들었다.
“도…도망가야 해… 무서워…”
루루는 몸을 바닥에 바짝 붙였다. 하지만 태연이는 단호히 말했다.
“이건 누군가의 울음이야. 우리가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라.”
그 말을 듣고도 루루는 주저했지만, 태연이의 손을 꼭 붙잡고 같이 언덕 위로 걸어갔다.
그곳엔 울고 있는 작은 별 하나가 있었다.
“내 꼬리가 없어졌어요… 하늘로 돌아갈 수 없어요…”
태연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루루, 우리 별의 꼬리를 찾아주자!”
겁에 질린 루루는 “무…무서워…”라고 중얼거렸지만, 태연이가 “나랑 같이 가면 무섭지 않아!”라고 말하자 루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4장. 그림자 바위
별의 꼬리는 ‘그림자 바위’에 있다는 정보를 듣고, 둘은 그곳으로 향했다. 바위는 마치 동굴처럼 어두웠고, 안에는 검은 늑대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루루는 기절할 듯 벌벌 떨었다.
“늑…늑대…”
하지만 태연이는 루루의 귀에 속삭였다.
“그건 진짜 늑대가 아니야. 그림자일 뿐이야. 우리가 무서워할수록 커지는 거야.”
태연이는 눈을 질끈 감고 앞으로 걸어갔다. 루루도 떨리는 발을 내디뎠다. 그림자는 처음엔 커지더니, 두 아이가 점점 가까이 가자 점점 작아져 바위 속으로 스르륵 사라졌다.
그곳에는 작은 별빛 가루로 만든 꼬리가 놓여 있었다.
“찾았다!”
제5장. 하늘 계단
꼬리를 되찾은 별은 기뻐서 하늘을 가리켰다.
“이제 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 하늘 계단이 사라졌어요…”
그때, 루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계단을… 만들어볼까…?”
태연이와 별은 루루를 바라보았다. 루루는 작지만 단단한 발걸음으로 바닥에 남은 별빛 가루를 한 줌씩 모아 조심스럽게 쌓기 시작했다.
“겁쟁이지만… 노력은 할 수 있어…”
별빛 가루가 점점 반짝이며 위로 이어지더니, 마침내 하늘로 닿는 계단이 생겨났다.
“와아, 루루 최고야!”
별은 계단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며 마지막으로 외쳤다.
“고마워요! 두려움을 이긴 친구들이여!”
제6장. 루루의 그림자
별이 사라진 후, 숲은 조용해졌다. 그러나 갑자기 땅이 흔들리며 거대한 그림자 토끼가 나타났다. 그 모습은 루루를 꼭 닮았지만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다.
“저건… 나야…”
루루가 중얼거렸다. “겁 많은 나의 마음… 두려움이 자라난 그림자…”
그림자 루루는 태연이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이 아이는 약하고, 언제나 도망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태연이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아니야! 루루는 별을 도왔고, 계단을 만들었고, 그림자 늑대도 이겼어! 루루는 용감해!”
그러자 루루가 조용히 말했다.
“…맞아… 난 겁이 많지만… 도망치지 않아…”
그 말이 떨어지자, 거대한 그림자 루루는 점점 작아지며 루루의 몸 속으로 다시 스며들었다.
“이제… 진짜 나로 돌아왔어…”
루루는 웃었다. 이번에는 떨림 없는 미소였다.
제7장. 돌아가는 문
달빛의 숲에 다시 은빛 문이 열렸다. 태연이와 루루는 함께 걸어갔고, 그 문을 지나오자 다시 할머니 댁 마당이 보였다. 마당엔 아침 햇살이 퍼지고 있었고, 토끼장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태연이의 어깨 위에 조그만 루루 인형이 살짝 걸려 있었다.
그 인형은 가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곤 했다.
“…고마워, 태연아… 다음엔 내가 널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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