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붉은 달빛 아래에서
태연이는 오래된 도서관 구석에서 책을 고르다가, 빛바랜 은장표지의 한 권을 발견했다. 제목은 없고, 은빛 갈퀴 모양이 표지를 따라 새겨져 있었다. 손가락이 표면을 스치자 갑자기 책이 환하게 빛나며 속이 휙 하고 어두워졌다.
“어… 어라?”
그 순간, 책장 사이로 강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태연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낯선 숲 한가운데 서 있었다. 하늘은 붉은 달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공기는 따뜻하고 이상할 만큼 생생했다.
“여긴… 어디지?”
그때였다. 멀리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며 거대한 그림자가 나무 사이로 스치듯 지나갔다. 비늘 같은 빛, 날카로운 갈퀴… 그리고 눈부신 은빛.
“설마… 루카?”
태연이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것은 전설 속의 존재, 은빛갈퀴 루카였다. 누구도 그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세상을 구할 용사의 동료가 되어준다는 마법 생물이라고 전해진다.
제2장. 은비늘의 숲
숲속에서 태연이는 신기한 존재들을 만났다. 말하는 꽃, 노래하는 버섯, 빛나는 돌무더기. 그들은 태연이를 보자 일제히 인사했다.
“용사의 아이가 오셨다!”
“은빛갈퀴 루카가 깨어났대!”
“이제 시간이 얼마 없어…”
태연이는 당황했다.
“무슨 소리야? 난 그냥 도서관에서 책 읽고 있었을 뿐인데…”
그때, 검은 망토를 쓴 꼬마 요정 ‘리레핀’이 나타났다.
“태연, 너는 우연히 선택된 게 아니야. 너는 루카가 기다리던 마지막 마음이야.”
“마지막 마음?”
“루카는 이 세계의 수호자지만, 어둠의 균열을 막기 위해선 진심을 가진 아이의 눈물이 필요해. 그걸 가진 건 너뿐이야.”
태연이는 믿기 힘들었지만, 루카를 본 순간 느꼈던 깊은 울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제3장. 루카와의 만남
밤이 깊어질수록 숲은 점점 더 이상해졌다. 나무는 검게 변하고, 풀은 시들어가며, 하늘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대로면 이 세계가 사라질 거야!”
리레핀은 태연이를 데리고 커다란 바위산 정상으로 향했다. 거기, 하늘을 가를 듯 거대한 존재가 있었다. 은빛 비늘과 부드러운 눈동자, 그리고 힘찬 갈퀴.
“태연아.”
그 존재가 부드럽게 말을 걸어왔다. 분명 용이었지만, 목소리는 사람처럼 따뜻했다.
“난 루카. 이 세계를 지키기 위해 깨어났어. 하지만 혼자선 부족해. 너의 마음, 너의 기억, 그리고 너의 눈물로 이 세상을 지킬 수 있어.”
태연이는 무언가 가슴 깊은 곳이 찡하게 떨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루카를 본 순간… 너무나도 오랜 친구를 만난 것 같았다.
제4장. 진심의 시련
루카의 등에 올라탄 태연이는 ‘균열의 언덕’으로 향했다. 거긴 세상의 틈이 열리는 곳, 어둠이 가장 먼저 쏟아지는 장소였다.
그 길을 가는 도중, 태연이는 이상한 환영을 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혼났던 기억, 친구에게 거짓말을 했던 기억, 아팠던 날 외롭게 울던 기억…
“이건… 내 기억들이야.”
루카가 말했다.
“이곳은 마음의 거울이야. 네 진심이 흔들리면 균열은 더 커질 거야.”
태연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하나하나의 기억을 마주했다. 울며 엄마에게 안기던 순간, 친구에게 용기 내어 사과하던 장면, 아픈 날 함께 있어준 고양이…
기억은 상처만이 아니라, 사랑도 함께 담고 있었다.
그 순간, 태연이의 눈에서 반짝이는 눈물이 떨어졌고, 균열 속에서 거대한 어둠이 튀어나왔다.
제5장. 어둠의 루카
어둠 속에서 또 다른 루카가 나타났다. 까맣고 붉은 눈을 가진, 파괴된 형태의 루카.
“이건…?”
리레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루카의 그림자야. 이 세계가 너무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 루카의 감정도 나눠진 거야. 이젠 진짜 루카와 어둠의 루카, 둘 중 하나가 이 세계의 주인이 될 거야.”
은빛 루카가 슬픈 눈으로 말했다.
“이젠 네가 결정해야 해, 태연아. 너는 무엇을 믿을래?”
태연이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나는… 나 자신을 믿을래. 그리고 루카를.”
제6장. 눈물의 은빛
태연이는 두 루카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가슴속 깊이에서 은빛갈퀴 책을 꺼냈다. 다시 빛을 내기 시작한 책이, 찢어진 하늘을 연결하며 무지갯빛으로 빛났다.
“모든 마음은 다 의미가 있어. 어둠도, 빛도, 함께 존재해야 완전해.”
그 순간, 루카의 어둠이 점점 투명해졌고, 두 존재는 천천히 하나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넌 정말… 용기의 아이야, 태연.”
루카의 목소리가 더 따뜻하고 깊어졌다. 마지막 은빛의 빛이 하늘로 퍼지자, 숲은 다시 초록을 되찾고, 하늘은 파랗게 빛났다.
제7장. 작별의 숲
루카는 웃었다.
“이제 이 세계는 다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 넌 돌아가야 해.”
“하지만… 너랑 같이 있고 싶어…”
“우린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어. 이 책이 열리면, 네 진심이 있다면, 나는 언제든 네 곁으로 갈 수 있어.”
루카는 빛으로 변하며 책 속으로 돌아갔다. 숲속의 생명들이 태연이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우리의 진짜 용사, 고마워.”
태연이는 조용히 책을 품에 안고 눈을 감았다.
제8장. 다시 도서관에서
“태연아,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도서관에서 친구 수연이가 태연을 흔들었다. 하지만 태연은 책상 위에 조용히 앉아, 반짝이는 은빛 표지의 책을 쓰다듬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범한 오후였지만, 태연의 눈빛은 전보다 더 깊어져 있었다.
‘루카… 꼭 다시 만나.’
그 순간 책 표지의 갈퀴 무늬가 살짝 빛나며,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바람이 태연의 귀를 스쳤다.
“언제든… 너의 진심이 나를 부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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