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비 오는 날의 초대장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봄날, 열두 살 태연이는 창가에 앉아 물방울이 유리창에 맺히는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따라 학교에 가기도 싫고, 기운도 없었다. 며칠 전, 소중한 친구와 작은 다툼을 하고 나서부터 계속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심했나…?”
그때,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태연이는 깜짝 놀라 창문을 열어보았다. 그런데, 창문턱에는 물방울로 만들어진 반짝이는 파란 카드가 놓여 있었다.
“당신을 물의 요정 나라에 초대합니다.
비의 정령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 방수장화의 수호자 드리즐”
태연이는 눈을 비비며 다시 읽었다.
“물의… 요정 나라?”
카드를 뒤집자, 아래에 작은 글씨가 보였다.
“카드 위에 손을 얹고 진심을 담아 ‘나는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세요.”
태연이는 조심스레 손을 얹고 속으로 말했다.
“나는… 가고 싶어요.”
순간, 발밑에서 파란 빛이 뿜어져 나오며 방 안 가득 물방울이 떠올랐고, 그 빛 속에서 반짝이는 하늘색 방수장화 한 켤레가 나타났다.
“우와… 예쁘다…”
방수장화를 신는 순간, 태연이의 몸이 가볍게 떠오르더니 물방울로 된 문이 열렸다.
그 문 너머에는 끝없이 펼쳐진 물의 세계가 보였다.
🌊 2부. 물의 요정 나라, 수르르
태연이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은 물결이 흘러가는 길 위였다.
물로 된 길, 물로 된 나무, 물고기처럼 생긴 요정들이 공중을 헤엄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태연님!”
반투명한 물방울 요정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그리고 저 멀리서, 긴 물결 머리를 가진 파란 망토의 요정이 다가왔다.
“저는 드리즐. 방수장화의 수호자입니다.”
드리즐은 정중히 인사하며 말했다.
“수르르 왕국의 하늘샘이 막혔어요. 그래서 이곳의 물들이 사라지고, 요정들이 힘을 잃고 있어요.”
“그런데… 그게 나랑 무슨 관계가 있어?”
“태연님만이 물의 문을 다시 열 수 있어요. 마음에 담긴 슬픔을 물에 실어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만이, 물의 심장을 만질 수 있거든요.”
태연이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친구와의 다툼, 말하지 못한 미안함, 쌓인 감정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여기에 온 거구나.”
🐚 3부. 네 가지 수문
물의 요정 나라 수르르는 네 가지 방향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늘샘으로 가기 위해서는 네 가지 수문을 지나야 했다.
각 수문은 하나의 감정을 대표하며, 문을 통과하려면 그 감정을 마주해야만 했다.
① 슬픔의 수문 – ‘눈물 호수’
첫 번째 수문 앞, 태연이는 깊고 잔잔한 눈물 호수를 만났다.
호수 속에는 그녀의 과거, 상처받은 기억들이 물속 영상처럼 떠올랐다.
그중엔 친구와의 싸움도 있었다.
“왜 날 무시했어?”
“그게 아니라…”
“됐어. 말 걸지 마.”
그 말을 떠올리자, 태연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 순간, 호수는 반짝이며 길을 열어주었다.
“슬픔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만이, 그 슬픔을 흘려보낼 수 있다.”
② 분노의 수문 – ‘파도 언덕’
두 번째 수문은 넘실대는 거센 파도가 몰아치는 언덕이었다.
이곳은 분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면 파도에 휩쓸려버리는 곳이었다.
태연이는 마음속 화난 기억을 떠올렸다.
부모님에게 억울하게 혼났던 날, 친구의 무심한 말, 이해받지 못했던 순간들.
하지만 그녀는 파도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말했다.
“이건 나를 지키려는 내 감정이었지만… 이젠 흘려보낼래.”
파도는 조용히 가라앉았고, 언덕의 문이 열렸다.
③ 두려움의 수문 – ‘거울 호수’
세 번째 수문은 거울처럼 모든 걸 비추는 호수.
태연이는 그 안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자신의 모습을 마주했다.
실수하는 나, 실패한 나, 친구에게 미움받는 나.
그 모습은 점점 커지며 태연이를 삼킬 듯 했다.
그러나 태연이는 눈을 감고 속삭였다.
“이런 나도, 나야. 그래도 나는 괜찮아.”
거울이 깨지듯 갈라지며 호수 위에 다리가 생겼다.
④ 사랑의 수문 – ‘무지개 비의 정원’
마지막 수문은 무지개 비가 내리는 정원이었다.
이곳에서 태연이는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했던 모든 것을 떠올렸다.
가족, 친구, 햇살, 비 오는 날 마시는 코코아, 웃음소리…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속삭임.
“진심은 전해질 수 있어. 용기를 내어 말해봐.”
그 순간, 방수장화가 반짝이며 하늘로 솟아올랐고, 거대한 하늘샘의 문이 나타났다.
💎 4부. 하늘샘의 심장
하늘샘은 거대한 수정으로 된 고래의 형상이었다.
고래의 눈은 흐릿했고, 배에서는 물 한 방울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드리즐가 말했다.
“이 고래는 감정의 바다에서 물을 받아 세계로 흘려보내는 존재예요. 지금은 슬픔이 막혀버린 거예요.”
태연이는 조용히 고래에게 다가갔다.
“나도 슬펐어. 그리고 미안했어. 하지만… 다시 웃고 싶어.”
그녀의 말과 함께 방수장화에서 빛이 뻗어 나와 고래의 심장에 닿았다.
고래가 천천히 눈을 뜨며 하늘로 물을 뿜어올리기 시작했다!
“다시 흐른다…!”
온 나라에 빛의 물결이 퍼지며, 말라 있던 샘들이 살아났다.
요정들이 노래하고, 비가 사뿐사뿐 땅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 5부. 돌아온 비 오는 날
태연이는 다시 지상으로 돌아왔다.
방수장화는 조용히 사라졌지만, 마음속에 남은 따뜻한 물결은 사라지지 않았다.
며칠 뒤, 태연이는 용기 내어 친구에게 말했다.
“그땐 내가 미안했어. 내 마음을 잘 말하지 못해서…”
친구는 환하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미안했어.”
하늘에서는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의 비는 슬프지 않았다.
그건, 태연이가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을 용기 있게 마주했던 감정의 물방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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